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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선거인단 264명 확보”..4개 경합지중 네바다 우위·펜실베이니아 맹추격
4곳 중 1개주만 이겨도 승리..트럼프는 4곳 모두 승리 필요해 선택지 좁아
트럼프, 일부주 재검표 요구·개표중단 소송제기..당선확정까진 시간 걸릴듯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 민주당 조 바이든 대선 후보가 11·3 대선의 승부처인 주요 경합주에서 승리하며 선거인단 확보 경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한층 더 유리한 위치에 섰다.

연설하는 조 바이든 4일(현지시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연설하는 조 바이든 4일(현지시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를 문제 삼으며 일부 핵심 경합주의 재검표와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해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최종 확정까진 시간이 걸릴 수 있다.파워볼엔트리

바이든 후보는 4일(현지시간)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과반인 270명에 6명 모자라는 264명을 확보했다고 AP통신과 AFP통신이 보도했다. 선거인단 확보 면에서 대권 고지의 9부 능선을 넘은 형국이다.

바이든 후보는 네바다와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남아있는 4개 경합 지역 중에서 6명의 선거인단만 추가로 확보하면 대선 승자가 될 수 있다.

특히 막바지 개표 국면에 바이든 후보 지지층이 많이 참여한 우편투표 개표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바이든 후보가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CNN방송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이 4곳 중 네바다에서 86% 개표 현재 49.3%의 득표율로 48.7%인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 네바다에 걸린 선거인단이 6명이어서 270명까지 남은 선거인단과 일치한다.

그러나 바이든 후보의 리드 폭이 불과 0.6%에 불과해 개표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네바다는 5일 낮 추가 개표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막판까지 초접전…트럼프·바이든 (CG) [연합뉴스TV 제공]
막판까지 초접전…트럼프·바이든 (CG) [연합뉴스TV 제공]

바이든 후보는 최대 승부처로 꼽히던 펜실베이니아에서 막판 맹렬한 추격세를 보여 역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곳을 이기면 매직넘버 270명을 넉넉하게 넘길 수 있다.파워볼게임

20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펜실베이니아는 바이든 후보가 88% 개표 현재 47.9%로 트럼프 대통령(50.8%)에게 2.9%포인트 차로 뒤쫓고 있다.

바이든 후보는 개표 초기 이곳에서 15%안팎의 리드를 허용했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우편투표가 대거 개표되면서 격차를 크게 좁히고 있다고 CNN은 분석했다.

조지아 역시 관심 대상이다. 16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조지아는 95% 개표 기준 바이든 후보가 49.1%로 트럼프 대통령(49.7%)을 0.6%포인트 차까지 바짝 따라붙은 상태다.

바이든 후보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95% 개표 기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1.5%포인트 차로 뒤쫓고 있지만 역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결론적으로 바이든 후보는 4개 경합지역 중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하더라도 1곳에서만 이기면 선거인단 매직넘버를 넘길 수 있다. 3곳 모두 승리하면 30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트럼프 대통령을 큰 차이로 이길 수 있다.

AFP는 트럼프 대통령이 확보한 선거인단은 214명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매직넘버를 채우려면 남은 4개 경합지역 모두를 이겨야 하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바이든 후보에 비해 선택지가 매우 좁은 상황이다.

다만 주요 외신들은 경합 지역의 경우 현재 개표가 진행되고 있고 후보 간 격차가 작아 아직 승자를 선언하긴 이르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우편투표를 사기투표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위스콘신의 재검표를 요구하고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조지아에 대해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한 것도 향후 바이든 후보가 승리요건을 채우더라도 당선인으로 확정되는 데 변수가 될 수 있다. 바이든의 승리라는 개표 결과에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한 채 소송전을 이어갈 경우 당선인 확정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jbryoo@yna.co.kr

[민경우 586칼럼④] 부패 DNA 내장한 민주화 관망 기회주의 세력

●직선제 이후 운동권은 세 그룹으로 분화
●1그룹, 이부영·장기표·김근태·이재오의 전민련
●2그룹, 백태웅·김영환·구해우의 사노맹·민혁당·자민통
●3그룹, 변호사·교수 경력으로 시민단체 활동
●1·2그룹 야전 뛴 세력, 3그룹 관망한 세력
●사회경제적 지위 확보한 뒤 운동 뛰어든 3그룹
●文정권 참여 엘리트집단 다수가 3그룹 출신

*586세대 NL(민족해방 계열) 이론가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 출신인 필자가 문재인 시대에 표하는 유감.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라임자산운용 전주(錢主)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편지를 계기로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정감사에서 이에 항의하는 발언으로 맞섰다.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검사 접대 의혹 등을 제기한 김 회장 편지 내용의 사실 여부, 수사지휘권의 위법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파워볼게임

갈등은 더 큰 권력투쟁 국면으로까지 비화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검찰’이 문재인 정권의 약한 고리를 건드리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그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문재인 정권의 약한 고리가 무엇일까. 

문재인 정권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직후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직선제 시행 이전 운동권의 거의 대부분은 거리에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군부를 어떻게 끌어내리느냐’였다. 직선제 이후 운동권들은 다양한 갈래로 쪼개지기 시작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의 이야기

1989년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결성대회를 갖고 정식 출범했다. 오른쪽부터 김근태, 이부영, 장기표 씨. [동아DB]
1989년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결성대회를 갖고 정식 출범했다. 오른쪽부터 김근태, 이부영, 장기표 씨. [동아DB]

첫 번째 그룹은 1970년대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로 6월 민주화운동 이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으로 1차 결집한다. 1989년 1월 결성된 전민련은 직선제 이후 운동권의 연합체였다. 이름에서 보듯 그들 모두는 민주를 넘어 다른 무엇, 즉 민중이나 민족이 강조돼야 한다고 봤다. 또 정당이 아닌 거리에서의 투쟁을 중시했다. 

전민련은 당시 운동권의 핵심 인사 대부분을 포괄했다. 의장 이부영, 사무처장 장기표, 정책 김근태, 조국통일 이재오 등 당시로 보면 최강의 라인업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민련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민련은 오래가지 못하고 균열되기 시작한다. 거리에서 무언가를 하자는 주장이 시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민주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산했다. 전민련에 속한 이들은 각기 지향과 노선에 따라 민주당, 민중당, 신한국당(한나라당) 등으로 갈라진다. 

두 번째 그룹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등이다. 사노맹 총책 백태웅은 서울대 법대 81학번, 민혁당의 김영환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그룹 구해우는 고려대 법대 85학번이다. 이들은 1985~1987년 불타오른 민주화운동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주도한 뒤 직선제 이후 민주화의 아젠다를 넘어서고자 전진한 집단이다. 

세 번째 그룹은 직선제 이후 존재감을 드러냈다. 변호사·교수 등의 직업을 운동의 1차 근거지로 확보한 후 시민단체 활동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운동에 개입하거나 아니면 직업 정치인이 된 경우다. 문재인 정권에 참여한 엘리트 집단 다수가 이에 해당한다. 이 그룹은 운동 경력에서 앞선 두 그룹과 비교되지 않는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룹은 실제 야전에서 무언가를 한 사람들이고 세 번째 그룹은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관망한 사람들이다. 

이 차이가 세 번째 그룹의 사상이나 생활 기풍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민주화운동의 어떤 시기에 운동가들은 일상적으로 연행되고 구속됐다. 운동권은 이와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혁명이나 항쟁을 꿈꿨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부동산이나 자녀 입시 등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연히 투기나 입시 부정 같은 의혹에 연루되지 않았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상대방의 노선과 사상을 중심으로 평가하지 재산 규모를 갖고 평가하지 않았다. 나만 해도 그렇게 살았다. 

반면 세 번째 그룹은 일단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한 후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 탓에 이들 대부분의 몸과 머리가 따로 논다.

2009년 이후 기회주의자들의 득세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2019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2019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나는 이들과 운동을 같이 한 적이 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등에서다. 그들 대부분은 허황된 이론과 과장된 수사를 구사했다. ‘한미 FTA 저지’ ‘광우병 쇠고기’ 같은 구호나 운동권 일각의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열풍론’ 등이 이런 맥락에서 출현했다. 

사람들은 운동권을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등으로 구분하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2005~2006년 무렵, 나는 운동권에서 참으로 희한한 광경을 목도했다. 세 번째 그룹의 인사들은 목소리 높여 무언가를 주장하곤 했다. 그런 주장 모두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들이 구사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 처지, 아파트 평수, 재산 규모로 평가해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문재인 정권의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DNA는 정치 노선이 아니라 돈이다. 그들이 여전히 개혁에 관심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진짜 개혁운동을 통해 구속, 연행, 경제적 궁핍, 사회적 고립 등에 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가다운 삶을 살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핵심부에 진입하는 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이 약진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석패했지만, 차기 대선에서는 해볼만하다는 인식이 진영 내에 확산됐다. 

이 과정을 거치며 훗날 두 번째 대선을 치르는 ‘문재인 캠프’의 골간이 형성됐다. 차기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지자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다. 시민단체에 느슨하게 결합돼 있던 교수와 변호사 그룹도 본격적으로 문 캠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당시 정세를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의 동향이다. 

1992년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출마하는 등 1990년대 초반 대기업은 한국사회의 실질적 리더 중 하나였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이 연이어 사법처리 됐다. 여론 역시 한국의 양대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대기업은 시장에서 약진했다. 반면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 탓에 대기업이 정치사회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그 틈을 타 문재인 캠프의 인사들이 세력을 확장했다.

이건희 前 삼성전자 회장의 장례식

이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장례식이다. 두 사람 모두 공과(功過)가 있다. 서울시는 박 전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치르면서 서울도서관과 서울광장 사이에 분향소를 운영했다. 이 전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물론 가족장이야 유족의 선택이지만, 한국사회 여론지형의 무게추가 기업보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쪽으로 얼마나 치우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극적이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다. 10월 25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허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도약을 이끌며 한국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었다”면서도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건희와 박원순 모두 공과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에서 가진 무게감이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이건희의 공과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과와 비슷한 무게로 재야한다. 박원순의 공과를 그 정도 수준의 무게로 논할 일은 아니다. 

참고삼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이 회장 빈소에서 45분 간 조문한 후 꺼낸 발언을 소개한다. 

“제 직장은 삼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삼성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한게임이나 네이버나 카카오로 이어져 왔다. 삼성에서 신경영, 한창 변화할 때,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할 때 있었던 사람으로서 회장님의 경영(방식)이 (제게도) 배어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삼성의 입사동기였고, 이후 ‘삼성 키즈’들이 한국의 새로운 사업을 이뤄내고 그 뒤로 또 네이버·카카오 출신들이 사업을 일궈내는 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의장의 말처럼 네이버, 카카오가 ‘삼성 키즈’가 창업한 회사라면 이 회장은 적어도 30년 간 한국경제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이낙연 대표와 허영 대변인의 발언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한국경제의 경이로운 발전을 이룬 주역들과 아무런 정서적‧인적 교감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2010년대 한국정치를 장악했다.

내로남불 ‘부패 DNA’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특목고, 해외유학, 부동산 축재, 뇌물, 성추행, 문서위조….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이렇게 썼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 굳이 지적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이 글을 쓰면서 정리해보려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를 조사한다는 것이 무망한 일이다. 그냥 전부 그렇다. 내로남불, 부정비리는 조사할 필요 없이 문 정권을 규정하는 키워드다. 그들이 좋아하는 말을 사용하자면 그들 전체의 DNA다. 

4‧15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기업에 이어 야당도 정치적으로 무력화 또는 약화됐다. 이제 민주당을 가로막을 세력은 없다. 여기에 ‘문파'(문재인 대통령 열성지지자)가 철벽처럼 문 정권을 지켰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천운이 따랐다. 이 정도면 이해찬 전 대표의 주장처럼 20년은 아니더라도 10년 정도는 무난히 집권할지 모른다. 야당이 뭔가를 한 것도 아니다. 보수언론의 저항은 찻잔 속 미풍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은 총선에서 야당을 지지할 마음이 아예 없었다. 

그럼에도 한쪽에서는 조국 사태와 윤미향 및 정의연 논란, 박원순 사건이 발발했다. 누가 공격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알아서 자멸했다. 현재 문재인 정권 핵심부 인사들이 2010년 이후 권력을 쥐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장된 ‘부패 DNA’가 이와 같은 사건들을 통해 스스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 후 또 많은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국면의 주된 플레이어는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장관, 윤석열 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검사장 등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조국 사태였다. 첫 단추가 모든 걸 결정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편은 예외인가? 원칙을 부정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은 참으로 많은 길을 돌아 왔다. 이제 결판 낼 때가 됐다.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 소장 mkw1972@hanmail.net

[소년범, 죄의 기록] ‘범죄의 정글’ 최약자, 소녀 범죄

[서울신문]※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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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운전, 성폭력, 절도, 폭행 등 소년범죄 유형의 70~90%는 남자아이들이 저지른다. 그런데 이 비율이 뒤바뀌는 유일한 범죄가 있다. 성매매다. 2018년 기준 성매매처벌법과 아동청소년보호법(성매수 등) 위반으로 입건된 소년범 가운데 여자의 비율은 각각 85.2%, 56.9%였다. 이들 대다수는 성 착취 피해자이면서 범죄자 처지에 놓여 있다. 서울신문이 지난 6개월간 만난 소녀 범죄자 대부분도 가출한 뒤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나 조건만남 사기(성매수남의 돈을 빼앗는 것)에 내몰리고, 이를 시작으로 점점 더 큰 비행과 범죄에 빠져드는 패턴을 보였다.

일러스트 김용오
일러스트 김용오

# 모텔에 갇힌 17세 하은이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열일곱 살 하은(이하 가명)이는 중학생 때 처음 성매매를 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쉼터 친구들이 소개해 준 ‘오빠’들은 처음에는 다정했다. 돌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어느 날 “화장하면 일 시킬 수 있겠지?”라고 수군거리던 오빠들은 하은이를 강제로 차에 태워 서울의 한 모텔촌으로 끌고 간 다음 조건만남을 시켰다. 그들은 성매매를 알선하는 애플리케이션에 하은이의 나이를 스무 살이라고 속여 올렸다. 누가 봐도 앳된 얼굴이었지만 어른 남자들은 진한 화장을 한 하은이를 어른으로 믿는 척했다.

1시간에 15만원, 많으면 20만원. 콘돔을 끼지 않으면 3만원이 더 붙었다. 오빠들은 휴대전화 서너 대로 성매수남과 연락하며 하은이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다. 많을 땐 하루에 60만원도 벌었지만 하은이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모텔에 갇힌 소녀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나중에 보호처분시설 선생님들과 함께 난생처음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진단받은 성병은 8개. 평생 불임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른들이 ‘악마’라 부르는, 소년범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6호 보호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 협조를 받았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어른들이 ‘악마’라 부르는, 소년범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6호 보호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 협조를 받았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가장 달콤하지만 가장 잔혹한 ‘성매매’의 대가

소년이 주범이라면 소녀는 미끼였다. 고등학생 때 가출한 수빈(19)이는 돈을 벌려고 아는 오빠들과 함께 조건만남 사기를 쳤다. 온라인에서 조건만남 대상을 구한 다음 수빈이가 상대방의 차에 타거나 모텔에 들어가려 할 때 그들이 친오빠인 척 나타나 구해 준다는 시나리오였다. 오빠들은 수빈이 눈앞에서 조건만남 장소에 나온 아저씨들을 마구 두들겨 패고, 편의점 현금인출기로 끌고 가 돈을 대출받게 했다. 수빈이는 “이용당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러웠지만 오빠들이 무섭기도 하고 돈도 필요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서(15)는 가출하고 알게 된 언니에게 포주가 되는 법을 배웠다. 절도, 폭행으로 소년원 10호 처분(소년범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단계)까지 받은 ‘센 언니’였다. ‘맹해 보이는’ 애들을 꾀어 성매매를 시키고 중간에서 돈을 챙겼다. 그 애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당장 쓸 돈이 필요했고, 그들이 없으면 내가 당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러스트 김용오
일러스트 김용오

# 갈 곳 없는 소녀들은, 제 발로 ‘그 짓’을 찾는다

성매매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역설적으로 또래 사이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같은 시설에 있어도 소녀들은 성매매 경험이 있는 애들을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오래, 많은 성매매를 했느냐에 따라 등급도 달라졌다. “폭행은 해도 ‘그 짓’(성매매)은 안 했다”고 하거나 “나는 한두 번 했으니까 ‘소걸레’, 쟤는 더 심하니까 ‘대걸레’”라고 비하하는 식이다.

이런 인식 탓에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 그 길을 택했다. 하은이도 그랬다. 6개월 만에 겨우 오빠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정말 갈 곳이 없었다. 분명히 피해자였는데, 학교 친구들은 물론 엄마까지 하은이를 탓했다. 그 뒤로는 모두와 연락을 끊고 자발적으로 ‘조건’을 뛰었다. ‘돈줄’을 구하는 건 쉬웠다. 가만히 있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살이야?”, “예쁘네.” 아빠뻘도, 삼촌뻘도 있었지만 ‘진짜 어른’은 없었다. 몇 마디 대꾸해 주면 상대는 금세 제안해 왔다. “우리 만날래?”

법은 아이들을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 분류했다. 지난 4월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 전까지만 해도 하은이 같은 아이들은 모두 보호처분 대상으로 처벌받았다. 강제로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로 봐 주지 않았다. 알선자나 성매수자는 이런 법을 악용해 오히려 협박의 도구로 쓰기도 했다. 아동청소년보호법이 소녀가 성매매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무시한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와 십대여성인권센터 등에 의뢰해 실시한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19세 미만 응답자의 61%가 “가출 후 주거·일자리·경제 문제 등 절박한 상황에서 성매매를 했다”고 답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청소년의 성행위 자체를 죄악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성년자는 알선자보다 성매매를 한 당사자의 죄가 더 크다고 여긴다”며 “성 착취 피해자인 청소년은 ‘한번 소문나면 끝’이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 더 큰 범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상담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서 조건만남을 했다는 아이들도 결국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받은 상처를 잘못된 방식으로 위로하기 위한 경우일 때가 많다”며 “돈으로 꾀어 이용한 어른들의 잘못을 아이들의 잘못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법원 “악영향 여지 있지만 정서적 학대로 인정 안 돼, 무죄”
신체 접촉 최소화 노력..”미필적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워”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세 살 아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아내의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던진 30대 아버지의 행동은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행위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광주지법 형사7단독 이호산 부장판사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A(3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0월 31일 주거지에서 아내 B씨와 몸싸움을 벌이고 B씨의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던져 3살 아들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별거 중 짐을 가지고 가려고 찾은 집서 퇴거를 요구하는 B씨와 다툰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욕설하는 목소리를 B씨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려고 하자 빼앗아 던졌다.

재판장은 “증거와 기록을 보면, 피고인이 옷을 잡아끌리거나 밀치는 행위를 피하려다 몸싸움이 발생했고 당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싸움으로 인해 피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위험 또는 가능성이 있었거나, 피고인이 이러한 위험 또는 가능성이 있음을 미필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장은 “휴대전화를 빼앗아 창밖으로 던진 사실도 인정되지만, 피해 아동이 이를 목격했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이 같은 상황이 피해 아동에게 정서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여지는 있지만, 곧바로 피해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행위로 인정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정신건강과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 또는 가능성이 발생한 경우, 이를 미필적으로 인식할 경우에도 정서적 학대행위로 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sdhdream@newsis.com

YTN라디오(FM 94.5)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

□ 방송일시 : 2020년 11월 5일 목요일

□ 출연자 : 안미현 변호사

– 치매 아버지가 큰언니에게 상가건물을 증여했어요… 증여무효 가능할까요?

– 먼저 아버지에 대해 성년후견인 지정이 먼저

– 무효 소송 졌을 경우… 아버지 사후 유류분 반환 주장 가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양소영 변호사(이하 양소영): 화나고 답답하고 억울한 당신의 법률고민 함께 풀어볼게요. 안미현 변호사님과 함께하겠습니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 안미현 변호사(이하 안미현): 네, 안녕하세요.

◇ 양소영: 오늘도 변호사님과 함께 상속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다른 형제보다 부모님에게 효도를 많이 했거나 병간호를 오래했을 경우에 상속액에 차등을 줄 수가 있습니까?

◆ 안미현: 그렇게 부모님께 효도를 많이 했거나 병간호를 오래했거나 하면서 부모님께 많이 도움을 드렸던 자녀는 자신이 기여분을 주장해서 자신이 기여한 만큼을 먼저 가지고 가고, 남은 재산을 다른 공동상속인과 나누는 방법으로 자신의 몫을 더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 양소영: 그러시는 부모님들이 유언으로 해서 유언장 작성을 통해서 분별 있게 나누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죠. 오늘은 그래도 양담소 홈페이지에 직접 도착한 사연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사연 듣고 변호사님 좋은 조언 기대해보겠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 상가건물이 저희 세 자매도 모른 채 큰언니에게 증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확인 결과 2018년 3월에 증여되었고, 큰언니 주장에 따르면 아버지께서 큰딸에게 주고 싶어 했고, 그렇게 증여가 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큰언니가 여러 번 아버지께 달라고 졸랐고,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증여를 해줬다고 합니다. 문제는 아버지께서 치매 증상이 있어서 2017년 8월 병원에서 인지저하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고, 2018년 5월에는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사업체를 같이 운영하면서 함께 재산을 일구셨지만 모든 재산은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인해서 폭력적인 성향이 더 심해졌고, 강압적이신 아버지를 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큰 형부는 의사인데요. 오래 전에도 부모님 집 매매를 통해 큰 형부의 병원개업에 상당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상가까지 큰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부모님의 재산 대부분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게다가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길을 잃거나 하면 큰언니가 아닌 멀리 떨어져 사는 제게 경비아저씨가 연락을 하시고, 부모님의 병원진료도 셋째 언니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은 받았으면서 부모 봉양에 소홀한 큰언니를 보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치매로 인해서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상가건물에 대해서 증여무효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상가는 2018년 3월에 증여가 됐고, 5월에 치매 판정을 받은 부분과 관련해서 지금 증여무효 소송이 가능할까요?

◆ 안미현: 증여무효 소송이 받아들여질까를 떠나서 소송의 제기는 가능한데, 문제는 지금 아버님이 치매이시거든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성년후견인을 지정하고, 성년후견의 개시가 먼저 진행되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 양소영: 그러니까 일단은 증여무효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그 주체가 지금 아버님이 되셔야 하는데, 아버님이 지금 현재 치매 진단을 받으셨기 때문에 아버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버님과 관련해서 성년후견인을 지정하고, 그 성년후견인이 증여무효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절차 자체부터 그렇게 밟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 안미현: 네, 맞습니다.

◇ 양소영: 그러면 증여할 당시에 아버님의 상태에 따라서 증여무효인지 여부는 만약에 소송이 제기가 됐을 때 어떻게 될까요?

◆ 안미현: 일단 증여가 무효가 되려면 증여를 해주신 아버지가 이 상가를 내가 큰딸에게 줘야 한다, 내가 이 상가를 큰딸에게 명의를 넘겨준다고 하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부분을 정확하게 판단했는지. 아버님의 의사능력이 사실 중요합니다. 아버님이 당시에 그와 같은 의사능력을 갖췄는지를 입증하는 게 이 소송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 양소영: 지금 그러면 아버님이 치매 진단을 받기까지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이런 내용이 있으실 것 같아요. 2017년 8월부터 인지 저하가 진행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소송에 이런 진료기록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판단이 될까요?

◆ 안미현: 이 치매라는 질병이 사실 다른 질병과 다르게 판단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아버님이 그동안 치료를 받으셨던 의료기록, 진료기록을 가지고 다른 전문인에게 감정을 맡겨서 아버님이 과연 이 상태였을 때 증여를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부분을 살펴봐야겠죠.

◇ 양소영: 변호사님 말씀대로 하면 5월에 받았다고 하는 치매 진단 자체도 완전히 판단 능력이 없는 진단인지 아닌지도 사실은 사연으로는 불분명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5월에 완전히 무능력인 진단이라고 했을 경우에 3월에, 그 시점에 어떤 상태였는지도 소송상으로 어려운 문제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아버님이 별다른 이야기가 없으신 사안인 것 같아서 느닷없이 이렇게 가서 증여계약을 하셨다는 것이 다른 형제나 어머니 입장에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막내동생이 성년후견인 절차를 소송을 하기 위해서 밟는다고 하면 성년후견인은 누가 될 수 있나요?

◆ 안미현: 일단은 배우자나 사촌 이내의 친족이 가능하고요. 그리고 법원에서 변호사나 법무사나 여러 전문가 후견인 풀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법인이 될 수도 있고, 법인과 친족을 같이 선임할 수도 있고. 성년후견인을 선임하는 기준이나 풀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 양소영: 사실 이런 사안인 경우에는 또 증여를 받은 큰언니 쪽도 서로 성년후견인이 되겠다고 다투기 때문에 성년후견인이 누가 되느냐 자체도 굉장히 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연을 보면 어머님도 억울하실 것 같기는 해요. 같이 사업을 하시면서 일군 재산인데요. 어머니도 상가 증여에 대해서 반대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어머니의 증언이 혹시 소송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안미현: 이게 지금 의사능력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증여할 때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입증하는 데 어머님의 증언이 들어갈 수는 있겠죠. 그런데 어머님이 그만큼의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수 있느냐, 이 이야기는 사실 지금 질의 주신 부분만큼으로는 저희가 답변을 드리기가 어려운데요. 아버님에게 의사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유력한 정황증거는 될 수 있겠습니다.

◇ 양소영: 아무래도 어머님이 가까이서 아버님을 보살피셨으니까 당시 상태도 아실 거고, 당시 그렇게 증여에 대한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도 오고 간 대화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 증언을 해주시는 것은 간접적으로 도움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일단 무효가 아니라고 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무효 소송이 불가능하거나 내지는 무효 소송에서 졌을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분들은 도저히 본인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을까요?

◆ 안미현: 이게 지금 아버님이 생존해계신 상황이기 때문에 증여가 완전한 것으로 인정됐다고 하면 사실상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회복할 방법은 없고, 아버님 사후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양소영: 돌아가시기 전에는 어쩔 수 없지만 돌아가시고 난 후에 어떤 절차를 밟을 수 있을까요?

◆ 안미현: 예를 들어서 아버님이 큰따님에게 주신 그 상가가 이게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더 이상 나눌 재산은 없다고 한다면 지금 남아 있는 다른 자녀들은 큰딸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해서 자신의 몫을 되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 양소영: 지금 보면 큰 형부 병원개업에도 도움을 주고, 여러 가지 해서 이미 큰딸 쪽으로 많이 내용이 갔고, 큰 형부 병원 같은 경우에는 명의는 큰 형부에게 줬지만 실질적으로는 큰딸에게 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다 주장한다고 하면 유류분을 통해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안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사연 주신 분, 안 변호사님 조언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요. 오늘도 변호사님 감사드립니다.

◆ 안미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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